1846년 파리 캉봉 거리를 종이 네거티브로 기록한 바야르의 초기 도시 풍경입니다. 긴 노출 탓에 움직이는 행인은 사라지고 건물과 거리의 골격만 남아, 오스만 대개조 이전 파리의 모습이 고요한 무대처럼 보존되었습니다. 종이 섬유가 빚어내는 부드러운 입자감은 칼로타입 특유의 회화적 정취를 더하며, 이 인화는 1965년 그의 원판에서 다시 프린트된 것입니다.

Hippolyte Bayard
이폴리트 바야르는 다게르, 탤벗과 같은 시기에 독자적인 직접 양화 인화법을 고안한 사진의 '또 다른 발명가'입니다. 1839년 프랑스 정부가 다게르만을 공식 발명자로 인정하자, 그는 익사한 사람처럼 분장한 「익사자로서의 자화상」을 찍어 항의했고, 이는 사진사 최초의 연출 자화상으로 기록됩니다. 이후에도 종이 네거티브로 파리의 거리와 정원을 차분히 기록하며 초기 사진의 시적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발명가의 정밀함과 예술가의 위트를 함께 지닌, 사진 역사의 가장 매혹적인 기원 중 하나입니다.
몽마르트르가 아직 풍차가 돌아가는 변두리 언덕이었던 시절을 담은 바야르의 칼로타입입니다. 훗날 화가들의 성지가 되는 이 언덕의 전원적 풍경은, 도시화 이전 파리 근교의 모습을 전하는 귀중한 시각 자료입니다. 풍차의 실루엣과 언덕의 능선이 만드는 소박한 구도에서, 일상 풍경에서 시정을 발견하던 초기 사진가의 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술 발명기인 1839년 무렵, 이폴리트 바야르가 몽마르트르 언덕의 풍차들을 촬영한 풍경입니다. 다게르와 별개로 직접 양화 방식을 고안한 발명가의 초기 실험이 담긴 기록으로, 아직 전원이었던 몽마르트르의 모습을 전하는 희귀한 시각 자료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막 태어나던 순간의 빛과 풍경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작품입니다.

1839년 이폴리트 바야르가 남긴 자화상으로, 사진술이 공표되던 바로 그 해에 발명가 자신이 피사체가 된 기록입니다. 직접 양화 방식을 고안한 그의 실험 정신이 자신을 향한 카메라에서도 드러나며, 초기 인물 사진의 긴 노출이 만들어내는 정적인 밀도가 인상적입니다. 사진의 탄생과 함께한 인물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사진사적 의미가 각별한 작품입니다.

1840년 이폴리트 바야르가 익사체로 분장하고 촬영한 '익사한 남자로서의 자화상'으로, 사진사 최초의 연출된 항의 이미지로 꼽힙니다. 다게르에게 밀려 자신의 발명이 외면당한 데 대한 항변을 한 장의 허구적 주검으로 표현한 발상이 놀랍습니다. 사진이 기록을 넘어 허구와 퍼포먼스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탄생 직후에 증명한, 개념적으로도 선구적인 작품입니다.